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란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제기한 국제 통화체제의 모순을 의미합니다.
‘돈’은 사람으로 치면 혈액과 같습니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는 쉽게 말하면 세계인의 돈이며 기축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은 강력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몸에 피가 충분히 돌아야 하는 것과 같이 전세계인들의 교역과 금융거래를 위해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는 전세계(해외)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며 현시점 기축통화는 달러이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를 해외로 계속 흘려보내야 국제 경제가 잘돌아가고 달러의 기축통화의 자리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달러를 계속 이렇게 해외로 보내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미국은 무역적자 혹은 국부 유출을 수반합니다…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고 기축통화로서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source: Lay Dalio, 변화하는 세계질서)
이것이 트리핀의 딜레마입니다.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이 계속 피를 흘려야 하는 구조이며 그러다보면 미국은 힘이 빠지게 되며 장기적으로는 달러 패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게되면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잃게되며 이는 첨부한 레이달리오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왔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트리핀의 딜레마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와도 같았으나… 이번에 트럼프 정권에서 꽤 영리한 수를 썼습니다.

최근 트럼프가 당선되던 무렵부터 흔들어대던 칼자루인 ‘관세’가 주요 동맹국들과의 협정에 따라 정리가 되었는데 15%라는 관세보다도 흥미로운 대목은 동맹국들로부터 받기로 한 투자입니다.
(investment/commercial deals)
즉, 관세는 위협의 카드로 사용된 것이고 투자라는 대가를 얻어냈습니다.
(이를 관세 레버리지라고도 부르는 것 같습니다.)
즉, 트럼프는 당초 관세 전쟁에서 원하던 모든 것을 얻어낸 것입니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의 의도는 크게 미국 내 제조업의 부활(첨단제조업 포함), 무역 불균형의 해소(그동안 달러패권국으로 너무 큰 피를 흘렸다.), 동맹국에 대한 비용 전가(= 무임승차에 대한 비용청구)입니다.
심지어 제 기억에 트럼프는 미국이 얼마나 해당 국가로부터 지금까지 어느정도의 무역적자를 봤는지 하나하나 체크하였고 가장 적자를 많이 본 국가에는 강경한 스탠스를 유지하였습니다.
관세로 시장에 괜한 충격을 주기보다는 직접적인 투자를 받아 해외의 국부를 미국으로 유입시킨다면 이는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최상의 선택지입니다.
투자 명목은 제각각이지만 한국으로부터는 3500억 달러, 유럽연합으로부터는 6000억 달러, 일본으로부터는 5500억 달러를 투자받는 조건으로 관세를 깎아준(?) 것으로 추정되기까지 합니다.
동맹국으로부터 이러한 투자를 받는 것이 트리핀의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팍스아메리카나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패권국가 유지) 정치인 트럼프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습니다.
즉, 비록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는 부담과 ‘무역적자’라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 관점에서 동맹국들로부터 막대한 경제적인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을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국제적 신뢰의 훼손이라는 반대 급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힘의 논리가 가장 우선시되는 2025년. ‘국제적 신뢰’라는 대단히 이상주의적인 뜬구름잡는 개념은 그렇게 중요하게 인식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고계실 독자분께서도 트럼프를 1년 가까이 겪고난 이후인 지금… ‘국제적 신뢰’라는 추상적인 유토피아적 워딩에 코웃음을 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주의자들이 꿈꾸는 세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아주 강력한 질서가 전제되어야 하며 그 질서는 강력한 힘으로 유지됩니다.
이 시대의 ‘제국’인 미국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제국의 힘을 이용해서 ‘팍스 아메리카나’를 연장하였습니다.
어떠한 관점에서 이는 동맹국에게 삥을 뜯는(?) 골목대장처럼 보이기까지도 합니다.
도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도덕, 신뢰, 이상…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트럼프의 전략은 굉장히 성공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