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글쓰기를 자동화한다.’, ‘역사 쇼츠 대본과 넣을 사진도 전부 만들어서 30분이면 쇼츠 한편 뚝딱이다.’ 이런 소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이제는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바보 소리를 듣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Chat-GPT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차기 정부에서도 AI에 100조원을 쓴다고 말하고 있으니… AI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이라는 표현을 인용하자면… 저도 경영학부 시절 정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4차산업 혁명’은 바로 지금 AI가 일으키는 4의 혁명이라고 말하면 정확해보입니다.
박태웅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AI는 우리가 가진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증폭기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예를들면 3의 능력을 가진 사람과 5의 능력을 가진 사람의 능력치가 이제 AI증폭기의 등장으로 30, 50으로 20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더 좁히기 힘든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특히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AI 사용은 현재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저도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있지만 일레븐랩스와 같은 AI음성을 활용해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물론 AI를 사용을 고려함에 있어 단기간에 더 많은 컨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영상이나 글을 소비할 시청자나 독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AI를 쓸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생각한다면 무턱대고 자동화 컨텐츠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의 영상을 볼 시청자들이 그것을 좋아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일단 제가 AI 녹음이나 AI가 써준 대본을 쓰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쇼츠 피드를 본다고 해도 특유의 기계음이나 AI녹음된 컨텐츠는 바로 꺼버립니다.
가령 “님들 이거 앎?”, “님들 떼돈 벌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잠깐만 들어보실?” 이런 커뮤니티 말투의 남성 AI 목소리들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마치 그럴듯하게 포장한다는 점에서 혐오감마저 일으킵니다.
특히 2차전지 기업들의 전망이나 배터리 시장의 업황 등을 1분짜리로 논하는 AI 자동화 쇼츠들은… 🥲할말은 많지만 아끼겠습니다..
AI로 30분만에 쇼츠를 만들고 커뮤니티 썰들이나 남들이 만든 글을 기반으로 GPT가 짜준 대본으로 쇼츠 제작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쇼츠 노가다를 해서 광고 수익을 노리는 방식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그것이 어떻게, 또 왜 ‘창작’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제 글이나 영상들이 주언규PD가 만든 노아에 우수한 성적으로 잡혀서인지 이 AI창작자의 레이더에 걸렸습니다.
제 글을 AI로 엎어서 쓰시는건지 거의 똑같이 쓰시는 분이 계시던데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보수적이라 그런건지… 이런 식의 컨텐츠 제작은 거부감이 심하게 듭니다.
며칠전 일론머스크가 X에 트럼프의 One Big Beautiful Bill에 대해 Abomination(역겹고 혐오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남들이 쓴 글을 AI로 저작권법에 안걸리게 갈아서 만드는 자동화 쇼츠에는 딱 이 표현이 적절해보입니다.
아마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께서는 이러한 AI컨텐츠들을 더더욱 싫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리서치나 자료탐색 등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 외 글쓰기나 녹음은 전부 시간을 들여서 직접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좋습니다… 제 목소리로 말하는게 좋으니까요.
저는 기계에게 쉽게 대체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녹음하는 제 목소리도 제딴에는 녹음할 때 넣는 내용의 중요도에 따라 다른 미세한 강약 조절이나 추임새까지 100% AI가 베낄 날이 올테지만 말입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새벽에 녹음할 때도 있어 AI로 하면 1분이면 끝날 일을 한참동안 하고 있자면 정말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앞으로도 영상 녹음은 기계쓰지 않고 제가 하고 싶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모든 것을 AI로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기계음이 주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고 따라서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이질적인 위화감은 감동이나 의로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이 되는 일을 보면 그것이 의로운지를 먼저 생각하라
